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배넉번 전투 (문단 편집) == 결과 == '''스코틀랜드의 독립.''' 에드워드 2세는 스코틀랜드군의 공격을 받는 가운데 국왕의 근위대가 필사적으로 포위망을 돌파하여 겨우 목숨을 건져 전장에서 도주할 수 있었다. 허나 전투의 결과로 스털링 성이 항복하면서 스코틀랜드 내부의 거점을 모두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기사 '''1천 이상''', 보병대의 '''절반 가량'''을 잃어 다시는 스코틀랜드에 대한 공세를 취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에드워드 2세의 권위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귀족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국정의 주도권이 의회로 넘어가게 된다. 그런데 의회는 난국에 빠진 잉글랜드의 위기를 타파할 능력이 없었고, 친국왕파와 반국왕파 사이의 권력다툼은 더욱 심각해졌으며, 여기에 전 유럽을 휩쓴 기근과 전염병으로 내정이 혼란에 빠지기에 이른다. 이후 에드워드 2세는 극한의 다툼 끝에 반왕파 세력과 내전을 벌여 승리를 거두나 간신을 총애한 끝에 인망을 잃어 끝내는 아내와 아들의 손에 왕위를 잃고 유폐되어 의문사를 당하고 만다. 배넉번 전투 이후 스코틀랜드에서 잉글랜드의 영향력은 완전히 소멸되었고 스코틀랜드는 실질적인 독립 상태가 되었다. 스털링 전투 이후 14년 만의 야전에서 거둔 결정적 승리로 인해 로버트 1세는 스코틀랜드인들의 열광적인 지지 속에 불안정한 왕위를 굳건히 하게 되었고 그 이전 폴커크 전투의 패배로 나락으로 떨어졌던 스코틀랜드인들의 사기도 충만해졌다. 이후 잉글랜드가 1328년 에든버러 조약을 통해 공식적으로 스코틀랜드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면서 스코틀랜드는 완전한 독립을 이룩했다.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MK18545_Bannockburn_Robert_the_Bruce.jpg|width=400]] || ||배넉번의 전장을 내려다 보는 로버트 브루스의 동상||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